어리석은 군중,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 가롯 유다가 우리 자화상
지난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에 미국 전역에서 개봉된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영화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의견이 분분한 부분은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적인 표현이라는 지적이나, 성희롱으로 인해 천주교회 주교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가운데 천주교회의 위상을 다시 살리려는 의도가 영화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상영되는 두 시간 동안 폭력이 끊이지 않고 피범벅이 된 예수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문제가 되었다.
하여, 고난주간에 보려고 기다렸던 발걸음을 떼어 지난 주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말았다. 신학과 고증에 대한 논란도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나에게 아주 새로운 생각을 던져 주었다. 한마디로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맞고 살이 찢기고 폭행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골고다 언덕에서 죽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모범답안은 '우리들의 죄'로 인해서라는 것이다.
영화 속 '그들'에서 발견하는 '우리'의 죄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의 한 장면.
가끔 신문이나 잡지 한 구석에 나오는 '숨은그림찾기'라는 심심풀이 게임이 있다. 복잡한 그림 속에서 여러 가지 사물들을 하나하나 찾아내는 것이다. 숨은그림찾기처럼 이 영화를 보면서 나 나름대로 숨겨진 그림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논란이 되고 있는 폭력성이나 인종차별의 원인이 우리의 죄라면, 그 영화에서 나의 죄라는 그림들을 찾을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숨겨진 죄의 그림들을 찾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기 전 10∼12시간 동안의 짧은 시간을 묘사한 영화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이 짧은 시간 속에 죄의 그림들이 너무나 많이 숨어 있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영화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거기에서 피곤하다고 잠을 자는 세 제자들의 모습부터 '우리의 부족함'이라는 그림이 나오기 시작한다. 예수님은 고민과 고통에 죽을 지경이라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시는데, 피곤하다고 잠을 자는 제자들은 누구의 모습일까? 우리의 모습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가롯 유다는 은 삼십 냥에 예수를 판다. 돈에 대한 욕심, 스승에 대한 배신의 그림이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예수를 지목하는 모습에서 예수를 시인하되 잘못 시인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죽음을 불사하고 끝까지 예수를 따라가며 부인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쳤던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예수를 부인하는 모습은, 오늘날 죽음의 위협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등 돌리고 예수를 부인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은 억지 논리로 예수를 죽이려 한다. 그들의 모함에 부화뇌동하여 거짓증거로 예수를 공격하는 사람들, 무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군중심리로 좇아다니며 소리 지르고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뛰는 사람들, 비굴한 침묵을 지키고 구경만 하는 무리들, 너무나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우리들의 자화상이 영화 속에 수없이 많이 숨어 있는 것이다.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죽이라는 함성은 어리석음이라는 죄의 극치를 보여준다.
우리가 아는 예수는 허상이다
▲떡을 들어 제자들과 나누시는 예수님. 영화의 한 장면.
그 다음에 시작되는 군인들의 폭력. 한국에서 군복무를 마친 사람이라면 군대의 폭력성을 잘 알 것이다. 근 30여 년 전의 일이지만, 내가 군(공군)에 입대할 때 훈련소에서 가르쳐준 소위 '목적암기' 1번이 '군대는 합법적인 무력단체다'라는 것이었다. 합법적인 무력단체니까 때리고 맞는 것도 다 합법적인 거라고 하면서 그렇게 무지무지하게, 군대말로 하자면 무식하게 패고 맞았었다.
소위 '배빳따'라는 게 있다. '열중 쉬엇' 자세로 서라고 하고는 야구방망이로 배를 쳐서 장 파열이 난 훈련병도 있었다. 자대에 배치 받고 둘째 날 밤에 신고식을 하는데, 옆에 선 동기가 소위 '아구창'을 맞고 이빨이 빠진 것도 직접 보았다. 이천 년 전의 군대에서도 폭력이라는 게 더 심하면 심했을 것이다. 군대의 폭력,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폭력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이 영화가 잘 표현해 준 것이다. 그런 폭력의 죄 옆에 서서 함께 때리고 발로 차고 침을 뱉고 조롱하고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 속에서 죄의 그림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동안 우리 머리 속에 세뇌되었던 십자가의 예수는 그저 가시관을 쓰신 머리에 약간의 피가 흐르고 옆구리에 창 자국이 있고 손과 발에 못이 보일락말락한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건 정말 잘못된 그림이다. 그건 너무나 깨끗한 그림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 때문에 그렇게 피 흘리셨다고 한다면, 우리의 죄는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길 수 있는 그런 그림이었던 것이다.
영화 속에 숨겨진 우리의 죄라는 그림들을 살펴보면, 그런 죄의 결과는 정말 끔찍한 피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밖에 없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잠이나 자는 모습으로 시작하여, 돈 욕심, 배신, 거짓, 모함, 거짓 증거, 체면, 자존심, 권력 다툼, 군중심리, 어리석음, 폭력, 비굴한 침묵, 잔인함, 살인…. 마땅히 그 죄값을 치러야 할 우리의 죄들이 그 짧은 이야기 안에 다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 지신 예수님
▲영화 속에 숨겨진 우리의 죄를 많이 찾으면 찾을수록 더 큰 은혜를 누릴 것이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오늘도 그런 죄들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내 속에도 그런 모습들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죄값이 어떤 것일까? 피투성이가 되어 얻어맞고, 발로 채이고, 폭력을 당하고, 죽임을 당할 게 뻔하지 않은가? 그걸 예수님이 몽땅 다 감당하신 것이다. 그리고 죄가 없으신 분이 그런 죄악의 대가를 다 치르면서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신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처절하게 죽으신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예수님의 부활로 막을 내린다. 나는 그렇게 부활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그렇게 우리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피투성이가 되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숨겨진 그림 찾기'를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유대인 차별이라는 주장이나 천주교회의 위상, 폭력성이 어떻고 하는 말은 사치스러운 논쟁으로 들린다. 이 영화 속에 숨겨진 우리들의 죄와 나의 죄의 그림들을 찾아보시라. 많이 찾아내면 많이 찾아낼수록 은혜를 더 많이 받을 것이다. 그 죄의 그림들을 심각하게 따져보시라. 그 그림들 때문에 그렇게 잔인한 폭력으로 예수님이 피투성이가 되신 거니까.
김진호 목사 / 예수님의 교회(미국 샌프란시스코)
